


견디는 시간
픽사 애니메이션 <월-E>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 지구에 홀로 남아 거리를 청소하는 로봇
의 이야기다. 바퀴벌레를 친구 삼고 황폐한 땅에서 기어코 솟은 새싹 하나를 소중히 품은 이
로봇이 애틋했는데, 요즘은 영화의 에필로그가 더 눈에 밟힌다.
영화는 인류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며 끝난다. “이렇게 심는 게 농사란다. 너희는 이제 온갖
종류의 식물을 심을 거야. 역시 고향이 최고야!” 선장의 외침이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이
어지고, 인류가 다시 자연과 문명을 일구는 그림이 빠르게 스친다. 우물을 파고, 밭에 물을
대고, 씨를 뿌린다. 물이 맑아지자 물고기가 돌아오고, 사람과 로봇이 함께 고기를 잡는다.
평생 걷지 않아 풍선처럼 부풀었던 인간들도 노동을 거듭하며 점점 홀쭉해진다.
거대한 쓰레기 행성이 다시 푸른 별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분 남짓. 축약해 놓으니
근사한 유토피아 같지만, 실제라면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시간이 훨씬 길지 않
을까. 노아의 방주에서 내리듯 우주선에서 내린 인류가 <월-E> 속 선장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마천루 사이로 풀 몇 포기 솟은 것만 보고 마냥 낙관적일 수 있을까. 일단 나부터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이걸 언제 다 해?’ 싶을 것 같은데. 이런 의문이 드는 건 ‘과정’을 견딜 인내
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솔루션과 AI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요즘, 결과는 빨리 나
오지만 인내심은 클로드의 토큰처럼 빠르게 줄어드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호를 만들며 유독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다. ‘시간’이다. 특집의 한 축인 바비큐
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불을 피우고 온도를 잡고, 고기를 올린 뒤 서두르지 않고 익기를 기다
린다. 맛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연기와 열기를 견딘다. 바비큐 맛은 어쩌면 불 앞에
서 견딘 시간이 좌우하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특집인 고전 역시 시간이 주요 축이다. 처음부터 고전인 작품은 없다. 누군가 쓴 것
이 시대를 지나 다시 읽히고, 묻히고, 또 발견되는 과정을 거친다. 고전이란 결국 오래도록 살
아남은 존재이자 끝내 남은 생각이다.
바비큐와 고전. 한쪽에는 불 앞에서 기다리는 몇 시간이, 다른 한쪽에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견딘 시간이 있다. 결국 이번 호가 들여다본 것은 무언가가 익고, 쌓이고, 끝내 남기까
지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당신도 잠시 함께한다면 좋겠다.

○ 발행일 : 매월 25일 (± 2일)
○ 크기 : 228mm x 300mm
○ 페이지 : 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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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시간
픽사 애니메이션 <월-E>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 지구에 홀로 남아 거리를 청소하는 로봇
의 이야기다. 바퀴벌레를 친구 삼고 황폐한 땅에서 기어코 솟은 새싹 하나를 소중히 품은 이
로봇이 애틋했는데, 요즘은 영화의 에필로그가 더 눈에 밟힌다.
영화는 인류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며 끝난다. “이렇게 심는 게 농사란다. 너희는 이제 온갖
종류의 식물을 심을 거야. 역시 고향이 최고야!” 선장의 외침이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이
어지고, 인류가 다시 자연과 문명을 일구는 그림이 빠르게 스친다. 우물을 파고, 밭에 물을
대고, 씨를 뿌린다. 물이 맑아지자 물고기가 돌아오고, 사람과 로봇이 함께 고기를 잡는다.
평생 걷지 않아 풍선처럼 부풀었던 인간들도 노동을 거듭하며 점점 홀쭉해진다.
거대한 쓰레기 행성이 다시 푸른 별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분 남짓. 축약해 놓으니
근사한 유토피아 같지만, 실제라면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시간이 훨씬 길지 않
을까. 노아의 방주에서 내리듯 우주선에서 내린 인류가 <월-E> 속 선장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마천루 사이로 풀 몇 포기 솟은 것만 보고 마냥 낙관적일 수 있을까. 일단 나부터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이걸 언제 다 해?’ 싶을 것 같은데. 이런 의문이 드는 건 ‘과정’을 견딜 인내
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솔루션과 AI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요즘, 결과는 빨리 나
오지만 인내심은 클로드의 토큰처럼 빠르게 줄어드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호를 만들며 유독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다. ‘시간’이다. 특집의 한 축인 바비큐
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불을 피우고 온도를 잡고, 고기를 올린 뒤 서두르지 않고 익기를 기다
린다. 맛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연기와 열기를 견딘다. 바비큐 맛은 어쩌면 불 앞에
서 견딘 시간이 좌우하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특집인 고전 역시 시간이 주요 축이다. 처음부터 고전인 작품은 없다. 누군가 쓴 것
이 시대를 지나 다시 읽히고, 묻히고, 또 발견되는 과정을 거친다. 고전이란 결국 오래도록 살
아남은 존재이자 끝내 남은 생각이다.
바비큐와 고전. 한쪽에는 불 앞에서 기다리는 몇 시간이, 다른 한쪽에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견딘 시간이 있다. 결국 이번 호가 들여다본 것은 무언가가 익고, 쌓이고, 끝내 남기까
지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당신도 잠시 함께한다면 좋겠다.

○ 발행일 : 매월 25일 (± 2일)
○ 크기 : 228mm x 300mm
○ 페이지 : 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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