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한 존재들

“내게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울퉁불퉁하고 옹이 자국이 많아 먹줄과 자를 댈 수 없으니 목수들이 눈
길조차 주지 않네.”
혜자(惠子)는 이 쓸모없는 나무를 들어 장자(莊子)를 겨눴다. 물론 까닭 없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아
니었다. 장자가 앞서 다소 날 선 말로 선공했으니, 혜자로서도 나무 한 그루쯤은 꺼내 들 만했다. 아무
튼 혜자의 속뜻은 ‘그대의 말도 이 나무처럼 크기만 할 뿐 쓸모가 없어 세상이 외면한다’는 것이었다.
장자는 되물었다. 그토록 큰 나무라면 광막한 들에 심어두고 그 곁을 거닐다가, 아래에 누워 쉬면 되
지 않겠느냐고. 재목으로 쓸 수 없으니 도끼에 찍힐 일도 없이 제 모습을 온전히 지킬 수 있지 않겠느
냐고. 쓸모없음의 쓸모, 무용지용(無用之用)에 관한 이야기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 일화를 칼럼을 쓰겠다고 다시 뒤적거렸다. 고전 강독을 대체 왜 해야 하느냐며
투덜거리던 무렵 흘려들은 이야기가 한참 뒤 이렇게 쓰인다. 역시 장자는 장자다.
혜자의 쓸모와 장자의 쓸모가 달랐듯, 쓸모를 가르는 기준은 몹시 주관적이다. “그거 하면 쌀이 나오
냐, 밥이 나오냐”는 말을 밥 먹듯 들으며 자란 세대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야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지 도통 가늠하기 어렵다. 어제까지 유용하던 기술이 오늘은 자리를 잃고, 한때 하찮게 여긴 감각이
뜻밖의 벌이가 되기도 한다. 반도체와 자동차 다음으로 달러를 벌어오는 K-컬처처럼.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난 것도 비슷하다. 그걸 왜 사느냐, 그게 재미있느냐, 거길 왜 가느냐. 좋아하는
마음 앞에도 우리는 곧잘 쓰임부터 묻는다.
어쩌면 쓸모는 그것을 가늠하려는 이가 손에 쥔 자에 따라 달라지는 판단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
다 손에 익은 자로 세상을 헤아린다. 그 자는 살아온 경험과 지식, 취향만큼이나 길이도 눈금도 제각
각이다. 내 자로 잴 수 없다는 이유로 쓸모없다고 여긴 것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거나 그저 좋은 것
일 수도 있다. 혹여 쓰임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려는 내 자가 짧았던 것은 아닐까.
그 짧은 자를 너무 일찍 들이댄 탓에 놓친 것이 있지 않나 문득 아쉽다. 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바라보
고, 조금 늦게 재봐야지. 눈앞에 또렷이 드러나지 않아 오래 보고, 다시 보고, 남의 말도 들어봐야 비
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으므로. 여러 관측과 계산을 겹쳐야 짐작할 수 있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처럼.

○ 발행일 : 매월 25일
○ 크기 : 228mm x 300mm
○ 페이지 : ± 100p
※ 배송일이 공휴일과 겹칠 경우, 배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구독 결제 이후에 중도 해지되지 않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 미착으로 인한 재발송 요청은 해당월에 고객센터로 연락주시면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단, 조기품절인 경우 대응이 어려우니 빠른 요청 부탁드립니다.)


무용한 존재들

“내게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울퉁불퉁하고 옹이 자국이 많아 먹줄과 자를 댈 수 없으니 목수들이 눈
길조차 주지 않네.”
혜자(惠子)는 이 쓸모없는 나무를 들어 장자(莊子)를 겨눴다. 물론 까닭 없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아
니었다. 장자가 앞서 다소 날 선 말로 선공했으니, 혜자로서도 나무 한 그루쯤은 꺼내 들 만했다. 아무
튼 혜자의 속뜻은 ‘그대의 말도 이 나무처럼 크기만 할 뿐 쓸모가 없어 세상이 외면한다’는 것이었다.
장자는 되물었다. 그토록 큰 나무라면 광막한 들에 심어두고 그 곁을 거닐다가, 아래에 누워 쉬면 되
지 않겠느냐고. 재목으로 쓸 수 없으니 도끼에 찍힐 일도 없이 제 모습을 온전히 지킬 수 있지 않겠느
냐고. 쓸모없음의 쓸모, 무용지용(無用之用)에 관한 이야기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 일화를 칼럼을 쓰겠다고 다시 뒤적거렸다. 고전 강독을 대체 왜 해야 하느냐며
투덜거리던 무렵 흘려들은 이야기가 한참 뒤 이렇게 쓰인다. 역시 장자는 장자다.
혜자의 쓸모와 장자의 쓸모가 달랐듯, 쓸모를 가르는 기준은 몹시 주관적이다. “그거 하면 쌀이 나오
냐, 밥이 나오냐”는 말을 밥 먹듯 들으며 자란 세대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야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지 도통 가늠하기 어렵다. 어제까지 유용하던 기술이 오늘은 자리를 잃고, 한때 하찮게 여긴 감각이
뜻밖의 벌이가 되기도 한다. 반도체와 자동차 다음으로 달러를 벌어오는 K-컬처처럼.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난 것도 비슷하다. 그걸 왜 사느냐, 그게 재미있느냐, 거길 왜 가느냐. 좋아하는
마음 앞에도 우리는 곧잘 쓰임부터 묻는다.
어쩌면 쓸모는 그것을 가늠하려는 이가 손에 쥔 자에 따라 달라지는 판단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
다 손에 익은 자로 세상을 헤아린다. 그 자는 살아온 경험과 지식, 취향만큼이나 길이도 눈금도 제각
각이다. 내 자로 잴 수 없다는 이유로 쓸모없다고 여긴 것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거나 그저 좋은 것
일 수도 있다. 혹여 쓰임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려는 내 자가 짧았던 것은 아닐까.
그 짧은 자를 너무 일찍 들이댄 탓에 놓친 것이 있지 않나 문득 아쉽다. 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바라보
고, 조금 늦게 재봐야지. 눈앞에 또렷이 드러나지 않아 오래 보고, 다시 보고, 남의 말도 들어봐야 비
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으므로. 여러 관측과 계산을 겹쳐야 짐작할 수 있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처럼.

○ 발행일 : 매월 25일
○ 크기 : 228mm x 300mm
○ 페이지 : ± 100p
※ 배송일이 공휴일과 겹칠 경우, 배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구독 결제 이후에 중도 해지되지 않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 미착으로 인한 재발송 요청은 해당월에 고객센터로 연락주시면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단, 조기품절인 경우 대응이 어려우니 빠른 요청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