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러설 때 완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안에서 세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변화한다. 하나는 테크네
(Techn ē). 나무가 의자가 되려면 목수의 의도와 기술이 필요하다. 도토리가 참나무로 크는
것처럼 때가 오면 스스로 그러하는 피시스(Physis)가 다른 하나다. 만들어야 하는 것과 자
라도록 두어야 하는 것. 지혜란 어쩌면 그 둘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직접 만든 한잔의 맥주에도 이 둘이 공존한다. 원하는 맛과 향을 설계하고, 맥아의 양과 물
의 온도, 홉을 넣는 시점과 위생 상태 등을 통제하는 것은 브루어의 일이지만 발효는 온전
히 효모의 몫이다. 발효를 시작하게 할 수는 있어도 대신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브루잉의 가
장 중요한 재료는 기다림일지도. 발효가 시작된 통을 수시로 열고 휘저으면 산소와 잡균이
스며 술을 망친다. 과정에 개입할 수 있지만 결말까지 명령할 수는 없다.
인간사에도 피시스의 시간이 있다. 필요한 것을 가르치지만 자녀의 삶까지 대신 살려 하지
않는 것. 마음을 건네되 같은 크기의 사랑을 돌려달라 강요하지 않는 것. 우리는 책임을 끝
까지 개입하는 일로 착각하지만, 어떤 책임은 물러설 때 비로소 완전하다.
테크네가 세계에 의지를 새기는 힘이라면, 피시스는 세계가 내 의지 밖에서도 완성될 수 있
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맛있는 맥주도, 충만한 삶도 모두 그 균형에서 탄생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만큼, 언제 그만해야 하는지를 인정하는 것. 발효통 앞에서 배우는 것
은 맥주 만드는 법이 아니라 물러설 때를 알아보는 지혜다.


물러설 때 완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안에서 세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변화한다. 하나는 테크네
(Techn ē). 나무가 의자가 되려면 목수의 의도와 기술이 필요하다. 도토리가 참나무로 크는
것처럼 때가 오면 스스로 그러하는 피시스(Physis)가 다른 하나다. 만들어야 하는 것과 자
라도록 두어야 하는 것. 지혜란 어쩌면 그 둘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직접 만든 한잔의 맥주에도 이 둘이 공존한다. 원하는 맛과 향을 설계하고, 맥아의 양과 물
의 온도, 홉을 넣는 시점과 위생 상태 등을 통제하는 것은 브루어의 일이지만 발효는 온전
히 효모의 몫이다. 발효를 시작하게 할 수는 있어도 대신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브루잉의 가
장 중요한 재료는 기다림일지도. 발효가 시작된 통을 수시로 열고 휘저으면 산소와 잡균이
스며 술을 망친다. 과정에 개입할 수 있지만 결말까지 명령할 수는 없다.
인간사에도 피시스의 시간이 있다. 필요한 것을 가르치지만 자녀의 삶까지 대신 살려 하지
않는 것. 마음을 건네되 같은 크기의 사랑을 돌려달라 강요하지 않는 것. 우리는 책임을 끝
까지 개입하는 일로 착각하지만, 어떤 책임은 물러설 때 비로소 완전하다.
테크네가 세계에 의지를 새기는 힘이라면, 피시스는 세계가 내 의지 밖에서도 완성될 수 있
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맛있는 맥주도, 충만한 삶도 모두 그 균형에서 탄생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만큼, 언제 그만해야 하는지를 인정하는 것. 발효통 앞에서 배우는 것
은 맥주 만드는 법이 아니라 물러설 때를 알아보는 지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