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깨끗함은 디테일링의 목적이 아니다. 완벽했던 순간,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부단한 투
쟁이 획득한 전리품일 뿐. 엔트로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무언가를 처음처럼 유
지한다는 건 자연의 섭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순간 의지로서 탈환하는 찰나의 기적
이라는 점에서 디테일링은 기술을 넘어 지독한 자기 수련의 의례로 치환된다. 완성은 고
정되지 않으며, 끝은 영원히 한 발씩 물러선다.
초심을 지키는 일이 미덕인 것은 선택의 때마다 처음의 이유를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역적 타락은 한 번의 거대한 변절이 아니라 작은 타협이 축적된 결과다. 초심은 순수
함이나 순진함과는 궤가 다르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언제나 정면이 본질을 향하도록 조
타하는 나침반이며, 능숙함이나 익숙함이 겸허를 잊고 가져올 무심을 경계하는 준거다.
그런 면에서 초심을 지키는 일과 디테일링은 꽤 닮았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사유를 빌리자면, 닦는다는 행위는 대상에 의지
를 새기는 일이다. 카드를 긁어서가 아니라 닦고 닦아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그것 중
하나였던 차는 내 것이라는 고유성을 획득한다. 초심도 그렇다. 그냥 둔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닦고 다스림으로써 오롯이 온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새겨진 의지는 반
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비 내리는 날 앞 유리에 맺힌 동그란 물방울이 그렇고, 바람
부는 날 끝내 꺾이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어떤 이에게 시련은 오히려 잘하고 있는지 확인
하고 점검할 수 있는 기회다. 어쩌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닦
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깨끗함은 디테일링의 목적이 아니다. 완벽했던 순간,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부단한 투
쟁이 획득한 전리품일 뿐. 엔트로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무언가를 처음처럼 유
지한다는 건 자연의 섭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순간 의지로서 탈환하는 찰나의 기적
이라는 점에서 디테일링은 기술을 넘어 지독한 자기 수련의 의례로 치환된다. 완성은 고
정되지 않으며, 끝은 영원히 한 발씩 물러선다.
초심을 지키는 일이 미덕인 것은 선택의 때마다 처음의 이유를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역적 타락은 한 번의 거대한 변절이 아니라 작은 타협이 축적된 결과다. 초심은 순수
함이나 순진함과는 궤가 다르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언제나 정면이 본질을 향하도록 조
타하는 나침반이며, 능숙함이나 익숙함이 겸허를 잊고 가져올 무심을 경계하는 준거다.
그런 면에서 초심을 지키는 일과 디테일링은 꽤 닮았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사유를 빌리자면, 닦는다는 행위는 대상에 의지
를 새기는 일이다. 카드를 긁어서가 아니라 닦고 닦아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그것 중
하나였던 차는 내 것이라는 고유성을 획득한다. 초심도 그렇다. 그냥 둔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닦고 다스림으로써 오롯이 온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새겨진 의지는 반
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비 내리는 날 앞 유리에 맺힌 동그란 물방울이 그렇고, 바람
부는 날 끝내 꺾이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어떤 이에게 시련은 오히려 잘하고 있는지 확인
하고 점검할 수 있는 기회다. 어쩌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닦
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